영국의 골프광이 골프를 더 치려고 1905년 서머 타임제를 개발했다. 1차대전 중 독일과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처음 실시했고 영국에서 2차세계대전 초기 덩케르크 철수 작전 등으로 전시상황이 불리해져서 군수물자를 빨리 생산하기 위해 도입했다.
1. 일광절약제 서머 타임
2021년 서머타임 일정
유럽의 올해 일광 절약 시간제가 2월 27일 시작되었다. 중부유럽시간 기준 새벽2시가 새벽 3시로 이 한시간 당겨졌다. 서머타임 시에는 유럽연합과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이고 영국과 한국은 8시간 차이가 난다.
서머 타임이 시작되는 첫날은 자동적으로 강제로 모든 사람이 잠을 한시간 덜 자서 조용한 원성이 구구하다. 그러나 시행 이유에 영국인들은 공감을 하기 때문에 시위는 하지 않는다. 한국은 일광이 사시사철 풍부해서 일광을 절약할 필요가 없다.
https://www.gov.uk/when-do-the-clocks-change
해제는 유럽연합 현행법에 따라 올해 10월30일 오전에 해제되어 시계바늘을 다시 1시간 되돌려 놔야 한다. 해제하는 날에는 하루를 번 기분이 나서 좋다. 겨우 한시간 차이에 울고 웃는다.
남유럽과 중부유럽은 천국이라고 할 정도로 날씨가 사계절 온화하다. 북유럽, 서유럽, 동유럽도 겨울이 길긴 해도 눈이 오는 정도의 기온이지 한국과 같은 맹추위는 없다. 런던은 겨울에 기온이 영하로 거의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눈 구경하기 힘들다.
역사상 서머타임 시초
1905년 영국의 윌리엄 윌렛이 골프를 더 많이 치기 위해서 개발한 제도이다. 그는 저서까지 발간하여 헌대 서머타임제의 기틀을 잡았다. 현재 세계 70여 개국에서 시행중이다.
일차대전 중 독일과 오스트리아제국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2차세계대전 초기 덩케르크 철수 작전 등으로 전시상황이 불리해져서 군수물자를 빨리 생산하기 위해 도입했다. 이것이 서머타임의 효시이다.
2. 찬반
서머타임제는 낮이 길어지는 여름철 자연광을 활용해 에너지를 아끼고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취지로 표준시를 1시간 앞당기는 제도이다. 유럽내에서도 남유럽과 중부유럽은 일조량이 풍부한 편이라 백인이라도 피부도 더 진하다. 그래서 일광을 절약할 필요가 없어서 반대를 해왔다.
일광절약제에 대한 반대법안이 2019년 3월 유럽의회를 통과했다.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져서 더이상 강제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회원국들이 여전히 일광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도 1948년 미군정에 맞춰 서머타임을 시작했다. 그후 몇차례 실시와 중단으로 거듭하다가 1961년에 폐지되었다. 근자에는 1987년과 1988년에 실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생체리듬이 교란된다는 등 득이 크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지하고는 다시는 거들떠도 보고 있지 않다.
캐나다도 서머타임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거의 대부분에서도 서머타임을 실행하고 있다. 융통성의 여지가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된 나라이고 유럽과 밀접한 관계이다.
미국의 아리조나와 화와이, 괌, 푸에토리코는 예외이다. 이곳은 일조량이 너무나 풍부하고 위도까지 낮아서 일광절약할 필요가 전혀 없다.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도 일조량이 풍부한데도 서머타임에 동참하는 건 그들에게 득이 많아서이다.
북미에서 시간이 바뀌는 날은 매년 3월 두번째 일요일 새벽2시이고 해제는 11월 첫째 일요일 새벽2시이다. 이에 따라 주식거래시간과 항공편 시간이 조정된다.
미국에서 1년에 두차례 시간을 변경하는 번거로움과 혼란을 없애기 위해 1년 내내 일광절약시간제를 영구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서머타임 영구화 법제화 시도는 하원이 반대해서 사장되었다.
영국인과 독일인은 일광절약제에 수긍한다. 유럽연합은 사실상 독일의 돈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존심 강한 프랑스는 실상은 돈이 없다. 그래서 회원국들이 서머타임제를 따라하는 양상이다. 그리고 항공편 시간과 업무 공조를 편하게 하기위해서라도 같은 시간대를 쓰는 게 편하다는 판단도 작용한다.
골프는 영국북부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영국의 골프광 윌리엄 윌렛이 골프를 더 일찍 더 많이 치기 위해서 서머타임제를 개발해 냈다.
1차 대전중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실시했다. 2차대전중 군수물자를 더 일찍 더 많이 생산해야 해서 영국에서 실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